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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에세이] 작은 절 이야기 18 - 연화산 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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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4-10 00:18 조회5,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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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에세이] 작은 절 이야기 18 - 연화산 옥천사
작성자 : 시작지기 , 작성일 : 2010년 04월 07일

"묵은 대웅전이야말로

자연미인이다"

-연화산 옥천사



옥천사 승군이 훈련했던 자방루(경남 유형문화재 제53호)

올해 들어 처음으로 보는 목련 꽃이다. 꽃등이 켜진 듯 둘레가 환하다. 한자는 다르지만 목련(木蓮)을 보면 꼭 사리불 존자와 우정을 나누었던 목련(目連) 존자가 생각난다. 효성이 지극했던 목련 존자가 도량 여기저기를 포행하며 웃고 있는 듯하다. 꽃의 개화도 사람의 웃음만큼이나 전염성이 강하다. 놀랍게도 몇 그루 목련의 개화가 도량 전체를 밝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목련 꽃을 보려고 옥천사에 온 느낌이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가 나를 자극하여 옥천사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어른거리던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목련 꽃이었던 셈이다.

목련 꽃이 없었다면 300여 년 전에 지어진 자방루(滋芳樓)나 타악기의 일종인 임자명반자(보물 제495호)가 있는 보장각(寶藏閣)도 내 눈에는 그저 우람하게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꽃에는 과거의 역사나 사건을 현재로 불러오는 숙명통(宿命通)의 향기가 있는 것 같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 대사가 창건한 옥천사는 화엄십찰의 하나로 융성하다가, 고려 광종 때는 혜거 국사가 주석했고, 조선시대에는 남해안의 큰 사찰들이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그러했듯 승군이 주둔하는 호국도량이 되었다.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기독교군에 맞서 남해안의 여러 사찰 소속의 승군들이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관군보다 더 맹활약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초기에 뜻밖에도 승군과 의병에게 패했던 왜군은 정유재란 때 철저하게 보복을 한다. 그때 승군의 임시군막이었던 옥천사의 모든 전각과 당우들도 전소되고 만다. 이후 폐사가 된 터에 학명, 의오 대사 등이 대웅전부터 중건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자방루는 임금의 명으로 주둔한 옥천사 승군의 숨결이 묻어 있는 누각이다. 정 3품의 높은 벼슬을 제수 받은 승장(僧將)이 자방루에 앉아서 훈련을 지휘하거나 비가 올 때는 승군을 교육시키는 실내교육장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해방과 6.25전쟁 전후로 설우, 인곡, 보문, 청담, 서옹, 혜암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참선도량으로 바뀌어 전국의 수좌들이 한두 철씩 둥지를 틀다가 거쳐 갔고-.




신심을 솟구치게 하는 자연미인 대웅전(경남 유형문화재 제132호)



자방루에 올라 단청이 퇴색한 대웅전을 한동안 바라본다. 고색이 창연하고 곰삭은 기둥과 서까래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성형미인이 넘치는 세상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자연미인을 보는 느낌이다. 옥천사 대웅전만큼은 절대로 승속을 불문하고 업자(業者)의 손을 타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묵은 대웅전에서 참배하는 마음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저절로 부처님께 엎드려지고 신심이 솟구친다.

대웅전을 나와 옥천(玉泉)의 물맛에 미소 짓고 있는데 때마침 한 스님이 지나가시고 있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자 차를 한 잔 권한다. 옥천의 찻물로는 어떤 차 맛이 날까 하고 몹시 궁금하던 참이었다. 차인들은 이럴 때 ‘차가 고프다’라고 말한다. 차를 권한 스님은 옥천사 회주이신 봉래(鳳來) 스님이다.

차는 진성(眞性) 스님이 우렸다. 차 맛을 더 깊이 음미하려면 알고 마시는 것이 좋다. 아는 것만큼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차입니다. 연잎은 따뜻한 성질이 있어서 녹차의 냉한 성질을 중화시켜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미소짓게 하는 물맛의 옥천



봉래 스님께서 자리를 함께 해주신 것도 행운이다. 동행한 각안 스님이 진성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나자, 미소만 짓고 계시던 봉래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저는 1958년도에 이곳으로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했어요. 그때 조실 스님은 인곡 스님이었고, 저는 인곡 스님을 시봉했어요. 바로 저 방에서 인곡 조실 스님께서 주석했지요.”

스님 말씀 가운데 인곡 스님과 효봉 스님의 얘기가 연향처럼 가슴을 적신다. 효봉 스님이 옥천사에 와 “인곡 아우 계시는가” 하면, 인곡 스님이 “효봉 형님,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반갑게 맞이하고서는 밤새 얘기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도(道)로 맺어진 두 분 고승 간의 맑은 우정이 부럽기만 하다. “일타 스님께서도 인곡 스님을 가리켜 깜깜한 밤중에 자다가 만져봐도 수좌이셨다면서 근래 100년 내외에 인곡 큰스님처럼 정진 잘 하시고 훌륭한 스님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의 그림자에 의지하듯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옥천사 가람들



인곡 스님을 직접 시봉한 스님이기에 존경의 염이 더한 것 같다. 스님은 옥천사 홈페이지에 ‘친견하면 친견할수록, 모시고 살면 살수록 더욱 우러러 보이시어 일심으로 존경하게 되며 (중략) 혜(慧)와 덕이 높은 큰스님을 어느 세상, 어느 생에서 다시 친견하여 탁월한 법력에 힘입어 생사일대사의 인연을 해결하겠습니까’ 하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인곡 스님 말고도 오대산 도인 보문 스님의 인품에 대해서도 잊지 못하고 계신 듯하다.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이미 아신 듯 보문 스님의 연로한 제자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자료를 모아 구도소설을 써보라고 권유하신다.

향을 싼 종이도 향기가 난다고 했던가. 천년 고찰이 향기로운 것도 고승들이 머물렀던 덕화가 아닐까 싶다.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 이용할 경우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서진주를 10킬로미터쯤 지나 연화산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하여 1002번 도로를 2킬로미터 달리다 보면 영오면 4거리가 나온다. 거기에서 1007번 도로를 2킬로미터 지나면 옥천사 입구가 나온다. 다시 3킬로미터쯤 오르면 옥천사 일주문이 보인다. 부산이나 광주에서는 서진주 인터체인지를 나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연화산 나들목을 이용하면 된다. 전화 055-672-0100

글, 그림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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