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속에 자리잡은 맑고 넉넉한 도량
경남 고성 땅은 옛날 소가야의 영토였다. 6세기 전반에 신라가 병합하긴 했으나, 서라벌에서는 먼 변방이었다. 따라서 의상대사가 이 지역의 민심을 잡기 위해 정략적으로 이곳에다 화엄십찰의 하나인 옥천사를 지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전하는 바에도, 원래 ‘비슬산’이었던 지명을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가 지금의 지명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웃한 지리산 쌍계사 진감국사비에도 “이웃 고을에 같은 이름인 옥천사가 있어서, 쌍계사 이름을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화산(蓮花山)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의 하나이자, 경남의 도립공원이다. 연화산은 지리산 영신봉(1651m)에서 내려온 낙남정맥의 한 지봉에 속한다. 하동과 진주 사이로 내려온 낙남정맥은 연화산에서 다시 북동진하면서 대곡산(543)-여항산(744)-무학산(763)으로 이어진다.
옥천사 입구 집단시설지구 왼편 산기슭에 방생량(放生場) 표석이 서 있다.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4년, 인조 때 개각(改刻)해 세웠다고 하니 4백년에 가까운 유물이다. 토박이 문화유산해설사인 김영환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서 방생 수륙재(水陸齋)가 열렸다고 한다. 표석 주위에 소류지가 있어서 물고기를 방생하고, 산짐승들을 위해 먹을 것을 보시했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자연보호 활동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표석 건너편에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지름이 30㎝ 안팎 되는 중형 용각류 공룡의 발자국이 수십개나 된다. 앞뒷발이 분명해서 보행의 방향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유적이 계곡에 자리하고 있어서 장마철이면 위로부터 돌과 토사가 내려와 족적의 마모를 재촉하고, 관광객들도 함부로 들어가 훼손을 앞당기고 있다. 안내판이라도 세워 자연사의 흔적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옥천사 반대편 연화산 자락의 계승사에도 얼마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악기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있다. 종단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
큰 저수지 주변엔 굴피나무 군락이 있고, 저수지를 지나면 노송, 느티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등 늙은 활엽수들이 만들어내는 선경 같은 숲길로 접어든다. 말채나무, 산뽕나무, 자귀나무, 층층나무, 산뽕나무, 비목, 단풍나무, 두릅나무, 편백나무, 쪽동백, 나도밤나무, 생강나무 등등의 중간 크기 나무들도 층위구조를 튼실히 하며 한데 어울려 있다. 일주문은 그 숲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일주문 오른쪽의 옥천은 서출동류하는 옥천사의 명당수이다. 갈수기인데도 물소리가 맑고 넉넉하다. 갈겨니와 버들치들이 물 위에 떨어진 단풍잎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옛날 옥천 곳곳에는 조선시대 불교피압의 역사와 관련된 물레방아가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길섶에 귀화식물인 미국미역취가 날보란 듯이 피어있다. 이름에서 보다시피 미국 원산의 여러해살이 국화과 식물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천왕문을 지나 편백나무과 전나무가 줄지어 선 석축을 오르면 암수 은행나무 노거수가 자리한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이 절에서 출가한 청담 스님의 부도와 탑비가 자리하고 있다.
마당 가운데 서면 자방루(滋芳樓)가 마치 거대한 성채처럼 석축 위에 앉아 있다. 자방루는 3백년 된 건물로, 당시 승군의 회합 공간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자방루 앞에 서면 옥천사의 안대가 말잔등처럼 부드럽게 지나간다.
옥천사의 가람배치는 네모난 마당을 가운데 배치한 조선 중기의 중정(中庭) 구조에 충실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심검당과 적묵당을 두고, 맞은 편에 자방루가 자리하고 있다. 전각 배치가 너무 조밀하여 좀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산을 다치지 않게 지형지세를 고려한 결과이다.
옥천사에는 토착화 과정에서 불교에 습합된 고유의 민간신앙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신령각에는 산신을 모시고, 칠성각에는 칠성신을 모시고, 옥천각에는 용왕신을 모시고, 요사채 부엌에는 조왕대신 탱화가 걸려 있다.
옥천사의 제신들은 삼신일각(三神一閣)으로 모시지 않고 각기 독립된 전각을 지어서 따로 모시고 있다. 특히 산령각은 반평에도 못 미치는 0.46평으로, 우리나라 전각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선 채로 절을 한다. 그래도 1백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
어느 절이나 대웅전 뒷쪽은 대개 음습하고, 더러는 지하수까지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 수기(水氣)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목조인 전각들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옥천사 대웅전 옆 배수구는 정성을 들인 만큼 아름답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작은 돌다리도 눈맛이 예사롭지 않다.
대웅전 공간 뒤에는 귀화식물인 털별꽃아재비가 희고 앙징맞은 꽃들을 안개처럼 피우고 있다. 고향이 아열대지역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날씨가 따뜻한 남부지에서 자란다. 키는 30㎝ 안팎이며, 가지와 잎에 털이 촘촘히 나 있다.
명부전 뒤로 가면 산이름과 절이름의 연기를 밝혀주는 옥천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용왕을 모신 용신신앙의 현장이다. 특히 고성지역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용신신앙에 대한 믿음이 깊다.
탐진당 처마 안에 말벌이 멋진 집을 지어놓았다. 말벌은 건물이나 바위 아래에 항아리 모양의 집을 짓는데, 말벌류의 집 가운데는 가장 아름답다. 말벌의 집은 나무껍질에서 섬유질을 뜯어 침과 섞은 밀랍으로 짓는다. 말벌은 가을이면 애벌레를 보호하기 위해 열어놓았던 문을 꼭꼭 틀어막는다.
산내암자인 청련암은 옥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암을 이상세포라고 한다면, 나무들도 암을 앓는다. 개울 건너 청련암 갈림길에 늙은 개서어나무가 암을 앓고 있다.
청련암 뒤로 아담하니 대숲이 내려와 있다. 청련암은 차나무를 키워서 생울로 조경하였다. 해우소 가는 길에 때마침 차꽃이 피어 꼬마장수말벌 몇 마리가 이 꽃 저 꽃 찾아다니며 꿀을 빨고 있다. 채소밭 밭둑의 산국에도 몇 종류의 벌들이 앉아서 꿀을 빨고 있다.
청련암 경내에는 무당벌레들이 유난히 많다. 전각마다 시위를 하듯이 떼거리로 전각에 붙어있다. 종류만도 얼핏보아 5~6가지나 된다. 무당벌레들은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나무기둥의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겨울 한 철을 나기도 한다.
해우소 곁에 앙징맞은 돌확이 있다. 대나무 대롱을 타고 물이 끊임없이 내려와 돌확에 말갛게 고여 있다. 이 물은 해우소에 볼일 보고 나와 손을 씻으라는 물이다. 사중에서는 이름하여 ‘세진수(洗塵水)라고 부르고 있다.
백련암으로 가는 숲길은 단풍물이 한껏 번져서 눈맛도 좋거니와 휘어져 구비도는 맛이 예사롭지 않다. 생태적으로 보면 소나무와 활엽수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젊은 날에는 서로 싸우다가 말라 죽기도 한다. 대개는 소나무가 밀리지만, 나이가 들면 나무들도 너그러워져서 싸우지 않는다. 백련암 가는 숲길은 노송과 활엽수와 왕대가 너그럽게 어울어진 평화의 숲이다. 산가막살나무, 개벚나무, 서어나무, 쪽동백, 합다리나무 등등도 큰 나무들 사이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늦가을 옥천사 골짜기에서 관찰된 조류는 거의가 텃새들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노랑턱멧새, 박새, 진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동고비, 직박구리,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큰오색딱다구리, 청딱다구리, 까마귀, 꿩 등이다. 조류의 다양성은 백련암 주변이 그 중 낫다. 새들도 안대를 찾기 때문이다.
백련암 뒤로도 연화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백련암에서 연화산 정상까지는 40분 거리, 거기에서 황새고개로 내려서 남산을 거쳐 청련암으로 내려오는 데 1시간 남짓 걸린다. 당항포 쪽빛 바다가 멀리 굽어보이고, 연봉 속에 묻힌 옥천사도 내려다보인다.
108사찰 생태기행 - 현대불교 발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04 14:57 조회6,911회 댓글0건본문
(71) 고성 연화산 옥천사/글·사진=김재일(사찰생태연구소장)http://cafe.daum.net/templeeco |
2006-12-29 오후 4:36:20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