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관광명소 연화산 옥천사와 상족암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찾아서...
경남 고성군에 있는 연화산 옥천사와 상족암을 찾아간다. 옥천사(경상남도 기념물 제140호)는 670년(문무왕 10) 혹은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다. 보조국사 등을 거치면서 몇 차례 중창했던 절이며 고려 말 요승 신돈(辛旽)이 노비로 살았던 절이며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뒤 여러 번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담 스님이 출가했던 곳으로 마당에는 청담 스님의 사리탑이 있다.
특히 화엄학을 널리 펴기 위해 전국 요소에 창건했다는 화엄12찰의 하나라고 전해지는데,
화엄12찰이란? 공주의 미리사, 지리산 화엄사, 부석사, 해인사와 보광사, 보원사, 옥천사, 계룡산 갑사, 화산사, 범어사, 국신사, 청담사이다.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자방루(滋芳樓), 좌측에 심검당(尋劍堂)현 탐진당, 우측에 적묵당(寂默堂)이 있으며, 그밖에 명부전ㆍ금당ㆍ팔상전ㆍ나한전ㆍ산신각ㆍ독성각ㆍ칠성각 등이 있다.
옥천사가 있는 연화산의 옛 이름은 비슬산이었는데, 폐허나 다름없던 옥천사가 인조 때 중창되면서 산 이름도 연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항상 맑은 물이 샘솟는 경내의 옥천(玉泉)샘에서 비롯되었으며 한국의 명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김봉렬 교수는 "옥천사는 살아있는 통불교 신앙의 건축적 박물관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옥천사에는 현재 총 119점의 유물(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9호)이 있다. 그래서 인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임에도 불구하고 유물전시관이 있었다.
<옥천사사적기>에 의하면 1654년(효종 5) 법당을, 1745년(영조 21) 대웅전을, 1764년 자방루(滋芳樓)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 천왕문
→ 사천왕상
먼저 옥천사의 배치를 살펴보면 1989년 건립한 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옥천사자방루가 덕 하니 버티고 있다. 넓은 마당에 큰 건물이 가로막은 듯한 느낌이다.
→ 자방루
자방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는 조선 후기의 목조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인 주심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옥천사 사적기에 의하면 1764년(영조40)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1984년 보수, 복원되었다. 사찰에서 누각은 일반적으로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데, 자방루 역시 앞 마당과 누각의 마루를 거의 같은 높이로 하여 대웅전 앞마당에서 출입하기 쉽도록 하였다. 대웅전 마당 쪽을 향하는 면은 난간을 설치하여 개방하였고 서쪽과 북쪽면은 벽을 설치하였는데, 특히 북쪽면은 7칸 모두 2짝씩의 널판장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볼 수 있게 하였다.
→ 자방루 현판
→ 자방루 연화옥천 현판
현판 글씨는 진경시대 후반의 글씨체이며 “연화옥천”이라는 현판 글씨는 추사의 수제자 위당 신관호의 예서체이다. 고종 12년에 암행어사 박이도 축원현판도 걸려있다.
→ 옥천사 대웅전
자방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이 보인다.
→ 대웅전 내 불상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효종 8년(1657)에 용성화상이 다시 지었으며, 그 후에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대웅전 내 동종
→ 대웅전 옆 석조물
→ 대웅전 옆 석조물 세부
앞면 3칸ㆍ옆면 2칸으로 팔작지붕집으로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의 천장은 2단으로 된 우물천장이고, 불단이 있으며 그 뒤에는 탱화가 걸려있다. 내부에는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되는 동종이 있다. 옆에는 또한 석조물이 있는데 특이하다.
→ 적묵당
→ 적묵당 앞 금고
→ 명부전 측면
→ 명부전 내 금강역사상
→ 명부전 내부
대웅전 좌우로는 탐진당과 적묵당이 있으며, 대웅전 옆으로는 명부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이 있다. 고종 32년(1895) 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건물이다. 문 입구에는 양 옆으로 금강역사상이 배치되어 있고 내부에는 판관들이 모셔져 있다.
→ 옥천사 나한전
→ 나한전 내부 불상
→ 나한전 나한
→ 옥천사 산령각
→ 옥천각
대웅전 뒷편 계단으로 올라가면 나한전이 있고, 그 외 명부전 옆으로 독성각, 산령각, 칠성각, 팔상전 등의 건물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작은 공간인 듯 하면서도 많은 건물들이 맞붙어 있는 특이한 곳이다.
→ 유물전시관 전경
옥천사에 들린 만큼 물맛 좋다는 옥천수를 마시고 바로 옆에 있는 2층의 건물인 유물 전시관으로 갔다.
→ 청동 은입사 향로
1층 내부 중앙에는 옥천사향로(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가 배치되어 있는데 높이 23㎝, 입 지름 27.5㎝인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향로로, 입 주위에는 넓은 테를 가진 전이 있으며, 안쪽으로 '의령수도사'라고 점선으로 새긴 글자가 있다.
향로 몸체의 둘레에는 4곳에 꽃 모양으로 창을 만들고, 그 안에 봉황을, 남은 공간에는 빈틈없이 덩굴무늬를 새겨 넣었다. 아랫부분의 받침대에는 문양이 없고, 그 형태가 몸체와 균형이 맞지 않으며, 조선 순조 16년(1816)에 보수하였다는 글씨가 새겨 있다.
→ 임자명반자
그리고 옥천사임자명반자(보물 제495호)도 있는데 고려 고종 39년(1252)에 제작된 동제(銅製)의 일반형 반자이다. 반자는 일명 금고(金鼓)라고도 한다.
반자에 새겨진 임자명(壬子銘)이라는 명문(銘文)에 의하여 1252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자의 양면은 폭 6.5cm의 사면에 테가 돌려 있고 그 안은 비어 있다. 그리고 반자의 외주에는 귀가 3개 달려 있으며 4행 186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특히 반자의 표면에는 융기된 선으로 4조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고 중심의 원내에는 여섯 잎의 화판이, 그 바깥쪽에는 정연한 연판문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가장 바깥 부분인 외주연부에는 도식화된 당초문이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크기는 구경 42cm, 중량 60kg이다.
→ 암행어사 박문수
그 외 암행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현판도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옥천사대종(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 옥천사 대종
→ 옥천사 대종 세부
조선시대 청동으로 만든 높이 110㎝, 입 지름 82.5㎝의 종으로 종을 매는 용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앉아,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윗쪽 띠에는 2자씩으로 연결된 80여자의 범자가 새겨 있으며, 아래쪽 띠에는 연꽃 덩굴무늬가 새겨 있다. 범자무늬 아래에는 4곳에 정사각형의 유곽이 배치되었는데, 유곽은 덩굴무늬를 그려 만들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도드라진 유두가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삼존불이 양각되어 있다. 아래쪽 띠 위편에는 ‘건륭 41년’으로 시작되는 글이 있어, 조선 숙종 27년(1701)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종은 진주 민란 때에 파열된 것을 수리하였다.
→ 삼장보살도
→ 명부시왕도
→ 지장보살탱
이외 옥천사 삼장보살도, 옥천사 십왕도 등 불화와 관련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옥천사를 이제 걸어나와 고성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상족암(쌍발)가는버스를 탔다. 고성에서 1시간 넘는 거리로 행정구역상은 고성군이지만 거의 사천 삼천포에 가깝다. 상족암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고성덕명리의공룡및새발자국화석산출지(천연기념물 제411호)가 있어 고성이 공룡의 서식지임을 증명해 준다.
→ 상족암 전경
이 곳 상족암에는 다음과 같은 애틋한 이야기가 전설로 전하여 온다. 하늘의 옥황상제께서는 새로운 옷을 즐겨 입기를 좋아 하셨는데 하루는 지상의 세계를 내려보고 계시다가 이 상족암의 절경에 감탄하여 저곳에서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면 양질의 옷이 될 것이라 하시면서 선녀들을 하강시켜 상족암에서 베를 짜라 하시고 베틀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선녀들은 옥황상제께서 내려주신 베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옥황상제가 입으실 금의를 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하루에 한벌씩 금의를 갈아입으시기 때문에 선녀들의 손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선녀들은 옥황상제의 엄중한 명령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열심히 금의를 짰으나 선녀들도 지상의 여자와 같이 한달에 한번씩 하는 생리현상 때는 도저히 금의를 짜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틀의 바로 옆에 여러개의 웅덩이를 파서 목욕을 하고 속옷도 씻었다 한다. 이렇게 애를 쓰면서 금의를 짜던 선녀들이 하나 둘씩 옥황상제의 명령에 의하여 1년에 한번씩 교대로 금의를 짜서 옥황상제께 상납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상족암에 가면 그 시대 전설을 증명하기도하는 양 그 웅덩이에는 붉은 해초가 자라고 있으며 상족암 암굴 안에는 그 당시의 베틀로 보이는 석직기(石織機)의 형상이 남아 있다.
→ 상족암 공룡발자국 전경
고성 덕명리의 고생물 화석 산출지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발자국화석 산지로 양적으로나 다양성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며, 중생대 새발자국 화석지로는 세계 최대이다.
→ 상족암 공룡발자국 화석지
→ 상족암 공룡발자국 세부
→ 고성 상족암 공룡발자국 안내판
이곳은 다양한 퇴적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1억 2천만년 전 생물의 생활흔적이 많이 나오고 있어, 공룡의 생활상, 자연환경, 퇴적환경, 해륙분포, 새의 진화과정 등을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화석지이다. 또한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 바닷물에 깎여 생긴 동굴 등 해안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심한 파도에 의한 자연적인 훼손은 물론 사람들에 의한 인위적인 훼손으로 인해 발자국 화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였다. 주변에 공룡 전시관이 있으나 아직 개관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파도치는 이 곳에서 한참을 공룡 발자국 찾기에 여렴이 없다보니 버스 막차 시간을 놓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으나 보람찬 답사길이 된 것 같다. 고성군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두 곳을 둘러보며 고성군의 아름다운 자연에 다시금 찾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