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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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옥천사 작성일08-03-03 10:24 조회6,102회 댓글0건본문
상세한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관리에 소흘함이 없도록 하느라고 하고는 있으나 지적하신대로 문제가 많습니다. 1.비용이 적게드는 사항에 대해서는 (사천왕문 바닥 과 옥천관리 )즉시 시정조치 할것이며 2.천왕문 좌우의 소나무는 마주보아 좌측의 것은 그곁의 전나무도 있어서 쉽게 넘어지지는 않을듯하고 우측의 것은 뿌리가 부실하여 염려되나 넘어진다면 기운 방향으로 보아 천왕문 앞으로 넘어질 것 같으므로 베어 없애기는 뭣하고 모종의 보완책을 강구하기로 하지요. 3.비각에 대한 설명은 미흡이 아니라 아예 없죠. 조치 하겠습니다. 4.마당의 급수대,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물을 받으러 오는 탓에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보기에 썩 훌륭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주자 가 있으니 철거나 개조도 쉽지 않고 시주자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일을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따가운 교훈을 느낍니다. 5통나무 집은 생각없이 지은 것이 아니라 이후에 제대로된 와가를 짓게되면 옮길수 있도록 비용과 이동성과 옥천사의 경제사정 등을 고려하여 고심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맞은편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예전(약30년전)에 한창 어려운 시절에 지은것이라 당시에는 조화나 미관을 고려할 만큼 여유도 안목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철거 해야 할것이나 유일한 수세식 화장실입니다. 관청에 누차 요청하였으나 예산지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자체 예산으로는 너무 힘든 실정입니다. 6.옥셈관리, 관리에 소흘함이 없도록 할것이며 헌금함과 촟불켜는 통을 하나로 하는 것은 매우 좋으신 생각으로 반영토록 의논해 보겠습니다. 옥셈 설명은 예전에 없던 것을 어떤 분의 생각이었던지 흔해빠진 전설의 표절로 감동도 없고 교훈적이지도 못하며 전국 100대 명수인 옥샘의 명예에 걸맞지 않은 내용이라 치워야 마땅하나 시주자가 있어서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7.축성전을 지은 사유를 알고 계시다는 말씀인지... 축성전은 원래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 그리고 왕실의명과 복을 비는 목적으로 지어서 그 안에 불상이 아니라 나무로 조각된 원패를 모셔두고 主上殿下壽萬歲 등의 내용을 적어둡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거개가 정사각형의 화려한 건물로 지어져 있습니다. 옥천사의 축성전은 지금의 조사전 뒤편에 있었고, 지금의 명부전 건물이 그것입니다. 진주민란(1862임술민란)이 일어나서 당시 경상 우병영과 관계가 깊었던(한지생산으로)옥천사가 농민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사찰 외곽의 건물들이 방화로 불타게 되자 사찰의 방어목적으로 축성전을 지었습니다. 농민으로 하여금 사찰에 방화하는 것은 왕실에 노골적인 적대행위를 하는 셈이니 부담을 주어 적대행동을 억제 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890년 상국 박규희가 시주한 비용으로 삼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후 그래도 1894년 갑오농민항쟁 으로 극락전(지금의 축성전 뒤에 있었던 독립된 암자)이 불타게 되자 축성전을 지금의 자방루 앞마당으로 전진배치 하여 민란의 방패로 삼으려 하였던 사실도 있습니다. 지금의 커다란 축성전은 어떤 연유로 그 자리에 짓게 되었는지 속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깊은 관심으로 조목조목 지적하신 송준경씨께 감사를 드리며 언제 옥천사에 오시면 소임자 를 찾아 주십시오. 감사의 뜻으로 차 한잔 대접해 올리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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