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196_1832년 옥천사 승당수개 상량문 > 성보박물관


신라 천년고찰 옥천사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 공경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연화산 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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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196_1832년 옥천사 승당수개 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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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무소 작성일26-09-28 19:57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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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 김명환

 

ID196_1832년 옥천사 승당수개 상량문

 

 

옥천사玉泉寺 승당僧堂 수개修改 상량문上樑文

 

 

삼가 아룁니다. 음陰과 양陽이 응축되었다가 흘러내린 산천山川은 다툼 없는 경계를 함장하고, 하늘(天)과 땅(地)이 아끼고 감춘 귀신鬼神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니, 그러한 경계와 사람이 서로 만나서, 비로소 이 사찰이 창건되었도다. 더군다나 이 도량은 청우靑牛가 머물던 복스러운 땅이요, 백마白馬가 있던 빼어난 경계와 같으니, 한 산의 정맥正脈이 바퀴살이 모이듯 모두 이곳으로 모였고, 모든 골짜기의 신령한 기운도 이 터에 담겨 있도다.

벌집같이 빽빽한 승방들은 바둑판처럼 질서 있게 벌려있고, 거위 날개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불전은 떼를 지어 나는 듯이 모여 있다. 그리하여 안개로 가려진 불법의 터에 마치 장시(霧市)가 성대하게 열린 것 같고, 아련히 설산(부처님이 수행했던 산)의 아름다운 모임을 이룬 것 같다. 사찰의 특별함이 너무나 두드러져서 남쪽지방 한 모퉁이의 형세가 아니니 어찌 가벼이 여기겠는가. 1000리나 되는 나라의 토대를 평안케 하도다. 아침 저녁의 바람과 달이 나그네들의 눈길을 거의 이끌고 봄 가을의 꽃과 단풍이 매번 자연에 묻힌 선비들의 흥취를 일으키도다. 옥 같은 샘에서 맑은 물 끊임없이 솟아나서, 절 이름 옥천도 나날이 드높아지도다.

이 사찰이 처음 조성되어 승당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을 살펴보니, 청나라 숭덕崇德 백룡白龍(1640) 가을에 학명과 의오(明悟) 두 대덕이 사찰을 중창하였고, 청나라 순치順治 황서黃鼠(1648) 봄에 영옥靈玉 선사가 승당을 일으켰으니, 인조 때부터 효종이 재위하던 시간이다.

그러나 옛날이 가고 새날이 오면서 바다와 산악의 모습도 여러 차례 변하였고,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뀌면서 바람과 구름의 변화를 그 얼마나 보았던가. 허공虛空에 솟은 건물에 썩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어 놓은 건물에 어찌 손상된 부분이 없겠는가.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으니 세상 일도 어찌 이와 같지 않겠는가.

지금 이 승당도 그와 같다. 이룬 것은 무너지고 무너진 것은 다시 이루는 것이니 건물의 수명이 다하면 옛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적임자가 나타나니, 축공笁公이 관리 감독하여 건물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세월의 파도는 멈출 줄 모르나니 기원정사라도 쇠락해지는 것이다. 기울어지고 무너지면 슬프고 애달픈 마음을 견디지 못하게 되고, 계획을 수립하여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바쁘게 움직이는 수고로움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임진년(1832)에 이르러 다시 신실한 대덕들이 있었으니, 한사람은 유성宥性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유협侑冾이었다. 두 대덕은 사찰의 양 날개가 되어 여러 수행승들(衆僧)을 지혜롭게 잘 이끌었다. 때로는 돌아다니며 권면하여 재물을 모으고, 때로는 절에 머물며 절의 살림살이를 주관하였다. 땅덩어리(大塊)가 기운을 불어내면 수많은 구멍에서 소리들이 조화롭게 울려 퍼지듯, 여럿이 의논하여 생각을 합치고 모든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하니, 시기가 무르익었음이요, 운수도 합당하였다. 음력 3월(執徐)로 시일을 택해, 수레를 몰고 소리치는 공사를 감독하여, 거듭 옛 제도에 맞춰 새롭게 복원하였으니, 크게 우뚝 솟은 3채의 승당(輪奐)이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하나의 흠결도 없이 무너진 모든 것들을 전부 다 회복하였다. 물과 돌의 깨끗함과 그윽함이 지금 이 승당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숲과 산의 고요함이 현재 이 승당의 모습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아득히 오래된 세월 속에서 해가 더해질수록 승당의 쇠락함으로 탄식이 그치질 않았었는데, 적당한 때가 되어 인연을 만나 마룻대가 우뚝 솟은 모습을 기대하게 되었으니, 이른바 ‘한 가지 이치가 순환하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여섯 방위(六偉)의 짧은 곡을 만들어, 이에 긴 들보를 여러 차례 들어올리는 것을 거들고자 한다.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東

한줄기 태양 빛(金烏)이 시야에 들어오니 一抹金烏指点中

곁에는 100척이나 되는 부상扶桑이 있구나 傍有扶桑高百尺

아침마다 들보 위로 찬란히 붉은 해가 비추도다 朝朝其上射暾紅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西

겹겹이 둘러싸인 푸른 산 한 눈에 들어오고 萬疊靑山一眼低

끝도 없는 흰구름 약속이나 한 듯 펼쳐졌으며 無限白雲如有約

늘 그렇듯 상서로운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네 依然來鎖瑞花堤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南

홀로 우뚝 솟은 화산花山 짙푸른 쪽빛이 펼쳐있고 特立花山橫翠藍

장중하게 서서 움직일 줄 몰라 인자仁者가 즐겼으리니 厚重不遷仁者樂

한가로이 거닐던 그 당시에도 어찌 탐색했겠는가 逍遙當日幾相探

어영차 들보를 북쪽으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北

해 지고 높은 난간에서 북극성 바라보니 危欄日倚瞻辰極

뭇별이 빛나며 둥글게 북극성을 에워싸네 衆星懸曜拱而環

이제야 두보(老杜)의 단심丹心 비로소 깨달았도다 老杜丹心今始覺

어영차 들보를 위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上

햇빛 비추어 환해지니 사람들 모두 우러러 보는구나 光臨白日人皆仰

장부丈夫가 마음을 비추는 것도 이와 같아서 丈夫心鏡亦如斯

환희 비춰서 깨달아야 본성을 보존하고 기를 수 있네 溟識照明在存養

어영차 들보를 아래로 들어올려라 呼耶許抛樑下

푸른 시내 밤낮으로 흘러 그치지 않는구나 碧溪晝夜流不舍

흘러 오는 것에도 근본 있음이 이와 같으니 看來有本亦如斯

이런 이치를 아성인 맹자에게 들은 적 있노라 此理曾聞鄒聖亞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모든 부처님이 이곳에 강림하고, 팔부신중이 이곳을 지키고 보호하며, 더 이상 하늘의 운행에 어그러짐이 없고, 땅의 질서도 영원히 순리에 맞아서 오래도록 한 나라의 빼어난 가람이 되고, 항상 천년의 복스러운 땅을 보전하여, 모든 일을 맡은 사람들이 함께 청정한 즐거움을 누리기를 원하노라.

 

도광道光 12년 임진년(1832) 3월 25일 회암晦庵의 4세손이고, 용악龍岳의 문인門人인 대운우엽大雲宇曄은 송암松岩 후인後人으로서 손을 씻고 삼가 글을 지었으며, 관점寬沾이 글씨를 쓰다.

 

처음 옥천사를 창건했을 때의 기록은 별도로 없고, 상량문의 내용에는 단지 당시 산중山中 노덕老德의 이름과 호, 시주施主 약간 명의 성명, 화주로는 별도로 연화승(緣化)의 이름을 전하고 있을 뿐이며, 순치順治 6년 무자년(1650) 윤3월 13일이다.

중창 상량문은 회암晦庵의 문인門人 송암松岩 노덕老德이 고체古體로, 산과 시내의 좋은 경치를 묘사하고 중창한 특별한 공로를 세세히 뚜렷하게 모두 기록하였으며, 옹정雍正 4년 병오년(1726) 4월 초4일에 삼가 적다라고 하였다. 또한 상량문에는 “지금이 말세라고는 하지만 화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부처님의 양식과 남은 재화를 축내었습니다. 비록 창건이라고 하지만 지략있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감히 중창重創한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시축 스님이 말을 꺼내시고 그 일을 시행하심에 볼 만하였기에 사찰 대중이 흔쾌이 힘과 뜻을 모아서 함께 고쳐지어 완성한 것이니, 후인後人들은 반드시 이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그 개략적인 기록을 글 뒤에 붙였으니 경외할 만하여 상고하게 하려는 것이다.

 

산중종사山中宗師

뇌곡雷谷 사언思彦 [청련암주실靑蓮庵主室]

설곡雪谷 복초福初 [극락전주실極樂殿主室]

도봉道峰 석잠錫岑 [백련암주실白蓮庵主室]

화월花月 봉우奉宇

연봉蓮峰 사활巳活

영담影潭 재환再還

흥선興善 우진宇軫 [주대향실主大香室]

성월聖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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