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화상 유공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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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무소 작성일26-09-28 16:17 조회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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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화상 유공문
천근 나가는 큰 종이 세상을 깨울만한 굉음을 가졌더라도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고, 석자 되는 거문고가 산소리 물소리를 내는 묘음을 가졌더라도 퉁기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인군자가 재물을 넉넉히 시주하고 공덕을 많이 쌓아 지혜롭고 어질다 해도 말이 아니면 후세에 전할 길이 없다. 그런즉 몇 줄의 글을 기록해서 만년에 흐를 공을 표창하는 것이 어찌 옛날에만 있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봄에 한 알의 조를 심으면 가을에 만 알을 수확할 것이다.”하였다. 이것이 원인을 닦아 결과를 얻는, 예외 없는 하나의 법칙이다. 부처님의 도량에 대선지식이 자비를 드리우고 덕을 베풀어 영원히 산문의 법계를 안정시킨 것이 어찌 다만 오늘 신심을 일으켜 보시한 것뿐이랴. 여러 겁 동안 어진 일을 닦아 이룬 결과이기도 하니, 이런 이유에서 감격하고 기리는 것이다. 아홉 길 높은 산을 쌓아 만든 신심과 노고가 만세무궁 아름답게 전한다는 것이 실로 이 뜻에 부합한다.
땅의 정기는 순환으로 말미암아 막힐 때도 있고 통할 때도 있으며, 사찰의 운세는 성쇠로 말미암아 성할 때도 있고 쇠할 때도 있다. 그런즉 부처님께 귀의하여 원력을 쌓고 공을 이루는 것은 만행을 닦아 교화하는 이의 힘이다. 따라서 길이 만세에 드러내 그 공로를 표창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큰 종과 훌륭한 거문고가 손으로 치고 퉁겨야 소리를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본사는 신라와 고려의 역사를 품은 오래된 사찰로, 남쪽에 멀리 떨어져 있다. 교학의 종이 오래도록 울리고 선종의 가풍도 멀리 퍼져, 한결같은 청규의 아름다운 모범이 천 이백여년을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근래의 역사는 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근 이백년 전에 종이 만드는 노역 사찰로 변하여 승려가 남아나질 않고 사찰이 무너져 거의 망할 지경이 되었다. 이 산의 노스님 농성화상 혼자 솔선수범하여 옛 사세를 회복하려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발원하였다. 뱃속 가득한 정성을 다 쏟고 가슴에 차오르는 비원을 발하였다. 먼저 종이노역을 면제받기 위해 쇠같이 굳은 의지와 피 끓는 마음으로 분신할 준비를 해 가지고 당시 몇몇 승려들이 서울로 올라갔으나 도성출입을 엄혹하게 금지 당하였으니, 상경 후 몇 해 만에 심장의 피가 고갈되었다. 매일 중추원 정관(역주;문・무의 인사관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자 쇠 같은 마음이 돌을 움직여 천만다행으로 노역에서 면제되었다. 본사에 돌아오자마자 옛 절의 운세를 회복하여 풍요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몇 년이 되지 않은 갑오년(역주;1894)에 지방 민란으로 재앙을 만나 사찰이 온통 폐허로 변하였다. 화상이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다해 쌓은 노력이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니, 어찌 분하고 원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다시 복구하려는 서원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재차 서울로 올라가서 정무대신에게 호소하니, 전에도 있었던 일이라 힘은 덜 쓰고 성과는 배가 되어 돌아왔다. 즉시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가해자를 엄중처리해줄 것을 지방관부에 의뢰하자 당시에 계획했던 우두머리와 주범 등이 모두 중벌에 처해졌다. 그런 후에 사찰의 운세가 점점 회복되는 쪽으로 갔으니, 산중 스님들이 합심하고 협력하여 중건에 노고를 쏟은 덕분이다. 산내 암자를 겨우 얽어놓고 나서 본사의 웅장한 요사들이 옛 품격을 되찾았다. 지난날의 절망을 되돌아보니, 상전벽해의 감회가 골수에 절절하게 사무쳤다. 그러나 화상이 공심으로 행한 위대한 업적과 불법을 호위한 혁혁한 공훈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며 후세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화상의 넉넉한 덕을 감히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산하는 변함이 없는데 인물은 어디로 갔는가. 우뚝 솟은 연화산과 끝없이 넘치는 옥천수, 이것이 화상의 유풍인가.
태황제 34년 정유(역주;1897) 3월 일
화상의 실적 ; “연화는 반드시 다시 필 날 있으리니 북두성 우러러 용루에 절을 올린다.”는 글귀.
화상은 일생의 표어로 사찰을 보호한 위업을 이룬 일이다.
첫째, 종이 만드는 부역을 없앤 후에 돈 삼천 냥을 받아 사찰복원에 쓰도록 허락받은 일이다.
둘째, 각 불전에 공양하고 공양 올리는 절차를 만들어 영구히 이행하도록 한 일이다.
셋째, 종이 만드는 잡비를 충당할 때 싸게 팔았던 토지를 제값에 회수한 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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