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 축성전 서문 > 성보박물관


신라 천년고찰 옥천사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 공경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연화산 옥천사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

옥천사 축성전 서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종무소 작성일26-09-28 16:25 조회14회 댓글0건

본문

사찰의 법당이 세상에 나온 것은 가짜 상을 두어 스스로 복을 빌려는 마음에서다. 한편 원당과 성전을 짓는 일은 세상에 드문데, 이는 오직 충성과 절의를 일으켜 임금이 오래 살기를 비는 곳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다복하기를 비는 마음과 임금이 오래 살기를 비는 마음 중에 무엇이 더 중한지는 같이 놓고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병상국 박규희가 지난 무자년(역주;1888) 봄에 촉영에 내려왔다.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공명하게 백성을 다스려, 다음 해에는 관청과 인민이 화합하고 소통하여 병영과 읍이 편안하였다. 그 해 겨울에 감찰사 魚公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또 법회를 보러 와서 임금의 교지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병상국이 나도 들었다면서 친히 본사에 가서 수 천금을 아끼지 않고 승려들로 하여금 백일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다음 해에 어공이 또 와서 기도하고 축원을 드린 후에 축성전 창건의 뜻을 담은 임금의 교지를 선포하였다. 병상국이 또 본사에 가서 도량을 돌면서 터를 보고 택지를 살폈다. 축성전을 지을 자금은 주위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친히 혼자 떠맡아 삼천 금을 보시하여 쓰게 하였다. 병상국이 나라와 백성으로 명분을 삼았으니 뉘라서 감사하고 치하하지 않겠는가. 승려들은 각각 공양하고 염불하면서 일을 하고 일꾼들은 필히 준비하고 살피면서 공사를 하니 대중이 다 기뻐하였다. 기축년(역주;1889) 봄에 시작하자마자 경인년 봄에 삼태기질을 끝냈다. 석수가 일을 끝내자 화공에게 명하여 몇 달 만에 붓을 놓았다. 충성과 절개가 있는데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하겠는가. 이에 상공이 다시 왔을 때 삼영이 함께 와서 날을 잡아 재계하고 단을 설치해 예를 갖춘 뒤 축성전의 삼위패(三位牌)를 같이 봉안하였다.

 

이 자리에 계신 듯 조심조심 하는 마음

세 칸 전각 위에 절로 뻗은 세 줄기 빛

세 분을 축수하는 성전을 환히 비추어

삼보의 가호를 영원히 누리게 하소서.

위로는 요임금의 바람 영원히 불어서

전쟁과 혁명의 근심이 없게 하시고

아래로는 순임금의 태양 길이 밝아서

태평성대 즐거움만 있게 하소서.

 

아아! 병상국이 충정한 원력으로 축성전을 조성하는 큰일을 해냈다. 변변치 못한 산승의 글로 어찌 감히 찬미하고 기록하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사중에서 정성을 쏟아야 할 일이기에 재주 없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제야 감히 찬문을 쓴다.

 

원당을 창설한 건 상국의 힘이라.

충정과 원력으로 행한 일이니

뉘라서 그 공덕 찬양하지 않으랴.

부처님 섬겨 밝게 하고 나라 위해 기도하니

정성은 광대하고 복덕은 태산북두 같아라.

 

유리 : 한창진

감동 : 서진욱

그 때의 승통 : 영허 문찬

도감 : 호월 영흡

별좌 : 철월 여인

 

광서 16년 경인(역주;1890) 2월 일 수룡 호징 삼가 찬하다.

 

위 글에서 “三位聖殿三寶護而永享”이라는 구절은 그야말로 귀감이 될 만하며 만세토록 이어질 다함없는 진리이다. 지난 갑오년(역주;1894)에 불이 나서 절이 다 타버리고 축성전만 남았다. 그 구역의 큰 절이 그때 보안책임을 맡았는데, 가해자들이 축성전을 방화하면 모두 역적의 법에 저촉될까봐 감히 훼손하고 불태우지 못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성보박물관 목록

Total 90건 3 페이지
게시물 검색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사
52904 경남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1로 471-9 종무소. 055-672-0100 / 박물관. 055-673-4951 FAX.055-672-0481
템플스테이. 055-672-6296
Copyright ⓒ 옥천사 202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