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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옥천사 청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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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명 작성일70-01-01 09:00 조회4,782회 댓글0건

본문

고성 옥천사 청동북

옥천사에 전하는 「고성 옥천사 청동북(固城 玉泉寺 靑銅金鼓)」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불교 금속공예품입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 기본 정보

* 명칭: 고성 옥천사 청동북
* 한자: 固城 玉泉寺 靑銅金鼓
* 다른 이름: 청동금고·금구·반자(盤子)
* 시대: 고려시대
* 제작 연대: 1252년(고려 고종 39)
* 크기: 지름 약 55cm, 측면 너비 약 14cm
* 지정: 보물
* 지정일: 1968년 12월 19일 

2. 무엇에 사용했을까?

오늘날의 북과 달리, 청동북은 청동으로 만든 금속 타악기입니다. 불교의식이나 사찰의 일상에서 사람을 모으거나 일정한 일을 알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금고(金鼓), 금구(金口), 반자(盤子) 등의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뒷면이 비어 있는 구조라 앞면을 두드리면 울림이 크게 퍼집니다. 

3. 문양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청동북의 앞면에는 여러 겹의 동심원이 돋을새김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중앙에는 6개의 둥근 연꽃 열매 모양이 돌출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겹으로 된 연꽃잎 문양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깥쪽에는 당초·운문 계열의 장식문양이 둘러져 있습니다. 

즉,

중앙의 연꽃 → 연꽃잎 → 무문대 → 바깥 장식문

이라는 원형의 질서로 구성되어 있어 고려 불교공예의 조형미를 잘 보여줍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측면의 명문

이 청동북이 특히 귀중한 이유는 측면에 명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명문을 통해 1252년 임자년 4월 12일, 고려 고종 때 서울의 장인 집에서 주조되었으며, 원래 **지리산 안양사(安養社)**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반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발원·시주 관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유물은 단순한 사찰의 의식구가 아니라,

고려 후기의 불교의례, 금속공예, 사찰의 경제·신앙 활동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물

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큽니다.

5. 원래 옥천사의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점 하나가 있습니다.

이 청동북은 처음부터 옥천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명문에 따르면 본래 지리산 안양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안양사가 폐사된 뒤 어느 시점에 옥천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옥천사 청동북은 지리산 안양사 → 옥천사라는 이동의 역사까지 품고 있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성 옥천사 청동북

고려 고종 39년(1252)에 만들어진 청동제 의식구로, 보물 제495호이다. 지름 55cm의 앞면에는 연꽃과 당초문을 정교하게 새겼으며, 측면에는 제작 연대와 원래의 봉안처가 기록되어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청동북은 지리산 안양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이후 옥천사로 전해져 오늘에 이른다. 고려시대 불교의례와 금속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1. 명문 한자 원문 — 판독문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수록된 허흥식 판독문(연구팀 수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壬子四月十二日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智異山安養社之飯子入重六十餘斤同願施主者
樞密院右副承副宣孫挺烈尙書皇甫琦檢校尙書兪承錫華嚴業三重勝壽大選景興知識正之故上將軍奇弼宣之嘉偶珍原郡夫人吳氏
郞將金伯龍之嘉偶樂浪郡夫人崔氏同丈院錄事鄭常之嘉偶海陽郡君金氏學錄朱竩之嘉偶金氏比丘尼淸惠等此根幹外錙銖之單甚多故不具錄
工人別將同正韓仲叙 棟梁道人宗一 負擔人上座普心 使用長存

다만 여기에는 전산 판독 과정에서 글자·관직명의 오탈자 또는 판독상의 이견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국가유산 지식이음의 해석문과 판독문을 대조하면 朱竩/朱선, 同文院/同丈院, 右副承宣 등의 표기에 차이가 보입니다. 따라서 전시·논문에서는 원문 탁본과 함께 대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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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장별 정확한 판독과 풀이

① 제작 연대와 장소

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壬子四月十二日
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
智異山安養社之飯子
入重六十餘斤

판독

고려 제23왕 환갑지년 임자 사월 십이일 재어 경사 공인가중 주성 지리산 안양사지 반자 입중 육십여 근

풀이

고려 제23대 왕의 환갑이 되는 해인 임자년 4월 12일, 개경에 있는 공인의 집에서 주조하여 지리산 안양사의 반자를 만들었다. 무게는 60여 근이었다.

여기서 **고려 제23대 왕은 고종(高宗)**입니다. 고종 39년인 1252년 임자년에 해당합니다. 국가유산 지식이음도 제작연대를 1252년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飯子(반자)**는 오늘날 말하는 청동북·금고를 가리키는 당시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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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원자와 시주자

명문은 이어서

同願施主者

라고 하고 여러 사람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즉,

“함께 발원한 시주자는 다음과 같다.”

라는 뜻입니다.

① 孫挺烈 손정열

樞密院右副承宣 孫挺烈

* 추밀원우부승선 손정열
* 고려 중앙 관료
* 추밀원은 국왕의 군사·기밀 업무와 관련된 핵심 관부였습니다.
* 따라서 상당한 정치적 지위에 있던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해석문에서도 손정열을 추밀원우부승선으로 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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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皇甫琦 황보기

尙書 皇甫琦

* 상서 황보기
* 중앙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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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兪承錫 유승석

檢校尙書 兪承錫

* 검교상서 유승석
* 역시 고위 관료층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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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勝壽 승수

華嚴業三重 勝壽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해석문에서는 이를

화엄종 삼중대사 승수

로 풀이합니다. 

즉 승수는 화엄계 승려로서 이 불사를 발원한 중요한 종교적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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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景興 경흥

大選 景興

* 대선 경흥
* 승려의 법계·승직과 관련된 명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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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知識 正之 지식 정지

知識 正之

여기서 **知識(지식)**은 단순히 오늘날의 ‘지식’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교적 맥락에서 선지식·불교 지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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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성 시주자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명문에서 주목할 부분입니다.

관료와 승려뿐 아니라 고위 관료의 부인들이 직접 시주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吳氏 오씨

故上將軍奇弼宣之嘉偶
珍原郡夫人吳氏

판독:

고 상장군 기필선지 가우 진원군부인 오씨

뜻:

고 상장군 기필선의 부인인 진원군부인 오씨

여기서 **嘉偶(가우)**는 훌륭한 배우자, 즉 부인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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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崔氏 최씨

郞將金伯龍之嘉偶
樂浪郡夫人崔氏

뜻:

낭장 김백룡의 부인인 낙랑군부인 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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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金氏 김씨

同文院錄事鄭常之嘉偶
海陽郡君金氏

뜻:

동문원 녹사 정상의 부인인 해양군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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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또 다른 김씨

學錄朱竩之嘉偶金氏

뜻:

학록 주선(朱竩)의 부인인 김씨.

이 부분은 朱竩의 정확한 독음과 글자 판독을 탁본으로 재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국가유산 지식이음의 해석문에는 ‘주선’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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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비구니 청혜

比丘尼淸惠

판독:

비구니 청혜

여성 재가신도뿐 아니라 비구니도 직접 시주자 명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시대 불교 신앙과 불사에서 여성 신도와 비구니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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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왜 모든 시주자의 이름을 적지 않았을까?

명문에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此根幹外錙銖之單甚多故不具錄

판독

차 근간 외 치수지단 심다 고불구록

풀이

이들 주요 발원자 외에도 작은 정성을 보탠 시주자가 매우 많으므로 일일이 기록하지 않는다.

즉, 이 청동북은 몇몇 개인이 단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주하여 만든 불사였습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 점을 근거로 이 청동북의 제작이 당시 유행했던 **신앙결사 형태의 안양사(安養社)**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

6. 실제 제작자는 누구인가?

명문의 마지막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工人

工人別將同正韓仲叙

공인 별장동정 한중서

즉,

장인(工人)은 별장동정 한중서이다.

한중서(韓仲叙)

한중서는 고려시대 금속공예 장인으로 상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특히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1213년 고령사 반자를 제작한 한중서가 39년 뒤인 1252년 이 옥천사 청동북도 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한중서는 단순한 지방 장인이 아니라 고려의 금속공예 제작 기술을 여러 지역의 불교 의식구에 구현한 전문 장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7. 제작을 감독한 사람들

棟梁道人宗一

동량 도인 종일

여기서 **棟梁(동량)**은 건축의 대들보라는 본래 뜻에서 발전하여 불사나 제작을 실질적으로 주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道人 宗一(도인 종일)

이 제작을 주관하거나 감독한 인물로 이해됩니다.

⸻

負擔人上座普心

부담인 상좌 보심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해석에서는 이를

책임자[負擔人]는 상좌 보심

으로 풀이합니다. 

즉 보심은 제작과 관련된 실무적 책임을 맡은 승려로 볼 수 있습니다.

⸻

8. 마지막 문구

使用長存

판독

사용장존

뜻

오래도록 사용되기를 바란다.

또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 반자가 오래도록 사용되어 보존되기를 바란다.

라는 의미입니다.

⸻

9. 인물 관계를 한눈에 정리하면

구분

이름

명문상의 지위·역할

관료

孫挺烈 손정열

추밀원우부승선

관료

皇甫琦 황보기

상서

관료

兪承錫 유승석

검교상서

승려

勝壽 승수

화엄종 삼중대사

승려

景興 경흥

대선

승려

正之 정지

지식

여성 시주자

吳氏 오씨

진원군부인

여성 시주자

崔氏 최씨

낙랑군부인

여성 시주자

金氏 김씨

해양군군

여성 시주자

金氏 김씨

학록 주竩의 부인

비구니

淸惠 청혜

비구니

장인

韓仲叙 한중서

별장동정·공인

제작 주관

道人宗一 종일

동량

실무 책임

上座普心 보심

부담인

⸻

10. 이 명문에서 특히 중요한 세 가지

①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제작했다

명문에

「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개경의 장인 집에서 주조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 불교 금속공예가 지방 사찰에서만 제작된 것이 아니라 중앙의 전문 장인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② 지리산 안양사를 위한 불교 의식구였다

「智異山安養社之飯子」

즉,

“지리산 안양사의 반자”

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옥천사에 있지만 원래부터 옥천사의 청동북은 아니었습니다. 

③ 한중서라는 장인의 이름이 남아 있다

「工人別將同正韓仲叙」

라는 기록 덕분에 제작자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중서는 1213년 고령사 반자를 만든 장인이기도 하여, 고려 금속공예 장인의 활동과 기술 계승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

고성 옥천사 청동북 — 1252년

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 壬子四月十二日

고려 고종 39년(1252) 임자년 4월 12일, 개경의 장인 집에서 주조한 청동북이다. 명문에는 이 청동북이 **지리산 안양사(安養社)의 반자(飯子)**였음을 밝히고, 손정열·황보기·유승석 등 관료와 승려, 여러 여성 시주자 및 비구니 청혜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제작자는 고려의 대표적인 금속공예 장인 **한중서(韓仲叙)**이며, 도인 종일이 제작을 주관하고 상좌 보심이 실무를 맡았다.
이 명문은 고려시대 불교 신앙결사와 시주문화, 여성의 불사 참여, 중앙 장인의 활동을 함께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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