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박이도 축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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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명 작성일70-01-01 09:00 조회3,6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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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초기에 암행어사를 지낸 박이도(1825-?)가 옥천사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부처님은 반드시 그를 도울 것(佛必隣哀)이라는 내용의 현판을 광서 원년(고종 12년, 1875)에 판각한 것
옥천사 「암행어사 박이도 축원 현판」은 자료가 확인됩니다. 국립진주박물관의 특별전 자료에서도 옥천사성보박물관 소장품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1. 유물의 기본 정보
* 명칭: 암행어사 박이도 축원 현판
* 소장: 옥천사성보박물관
* 제작 시기: 1875년(고종 12, 광서 원년)
* 관련 인물: 암행어사 박이도(朴履道)
* 박이도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확인되며, 1862년(철종 13) 통영의 곡물 수납 폐단 등에 관한 서계를 올렸습니다.
* 옥천사 현판은 박이도가 옥천사를 방문한 일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2. 현판의 명문
국립진주박물관이 공개한 판독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思深去後
佛必擧哀
公之壽福
海闊山凜
公之爵祿
六府三台
公之苗裔
百世流來
국립진주박물관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思深去後
떠나신 뒤에 깊이 생각해보니,
佛必擧哀
부처님도 틀림없이 슬퍼하셨으리라.
公之壽福
공의 수명과 복은
海闊山凜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높을 것이오.
公之爵祿
공의 작록은
六府三台
육부와 삼정승에 미칠 것이며,
公之苗裔
공의 후손은
百世流來
백 대까지 이어지리라.
3. 박이도와 옥천사의 관계
박이도는 朴履道라는 이름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합니다. 1862년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통영의 곡물 수납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단과 군량미 문제 등을 조사하여 보고했습니다.
따라서 이 현판은 단순한 축원문이라기보다 암행어사가 옥천사를 방문한 사실과 당시 지역사회에서 형성된 사찰과 관료층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암행어사 박이도 축원 현판(暗行御史朴履道祝願懸板)
1875년(고종 12)에 제작된 현판으로, 암행어사 **박이도(朴履道)**의 수복과 관작, 후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글을 담고 있다.
현판에는
「思深去後 佛必擧哀」
곧 “떠나신 뒤에 깊이 생각해보니 부처님도 틀림없이 슬퍼하셨으리라”는 구절을 비롯하여, 박이도의 수명과 복이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높으며, 작록이 육부와 삼정승에 이르고 후손이 백 세대까지 이어지기를 축원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박이도는 1862년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 현판은 조선 후기 암행어사와 옥천사의 인연, 관료사회와 사찰의 관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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